– 길모퉁이가게 여행기
제주에 수국이 피기 시작하면, 마음이 먼저 여름을 알아챈다.

푸른 하늘 아래 색색이 피어나는 수국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제주 초여름의 선물 같은 풍경. 그중에서도 조용히 꽃을 피우고 있는 숨은 명소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서귀포시 동광리에 있는 ‘길모퉁이가게’다.
이름처럼 정말 마을 길모퉁이에 자리 잡은 이곳은 언뜻 보면 오래된 시골 구멍가게 같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진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수국길은 작고 조용하지만, 그만큼 더 정겹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수국이 막 피기 시작한 6월 초라 아직 만개는 아니었지만, 그 모습도 충분히 예뻤다. 아마 지금쯤은 꽃이 활짝 피어 절정을 이루고 있을 것 같다.
가게 맞은편 언덕에는 ‘3단 수국 포토존’이 있다.

언덕을 따라 층층이 수국이 심어져 있어서, 사진을 찍으면 마치 꽃 속에 파묻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로 사진 찍는 내내 “와…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스냅 사진 작가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장소라고. 다만 최근에는 예약제로 운영된다고 하니, 전문 촬영을 생각하고 있다면 미리 문의해보는 게 좋겠다.
사진을 찍고 있으니 주인 아주머니가 조용히 다가와 요구르트 한 병을 건넨다. “여긴 입장료 대신 요구르트 한 병이에요~” 하고 웃으며.


한 병에 5,000원이지만, 이 정원을 돌보고 꽃을 가꾼 마음이 전해져 전혀 아깝지 않았다. 차가운 요구르트를 마시며 꽃 사이를 걷는 순간이 참 기분 좋았다.
그리고 꼭, 가게 뒤쪽 정원도 들러보길 추천한다.


본가 뒷마당에는 또 다른 수국 정원이 펼쳐져 있는데, 커다란 나무 아래 시원한 그늘과 작은 오두막이 어우러져 마치 작은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잠깐 앉아 쉬어가기에도 참 좋았던 그곳, 개인적으로는 맞은편 포토존보다 이 뒷정원이 더 마음에 들었다.
정원 한쪽에서는 시고르자브종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와 반겨준다. 괜히 이 공간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던 순간.

이번 제주 여행에서 이곳을 발견한 건 정말 뜻밖의 행운이었다. 다음엔 수국이 활짝 핀 6월 중순쯤, 다시 한 번 꼭 찾고 싶다. 너무 번화하지 않아서 더 좋았던 이곳, 조용히 꽃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살짝 추천해본다. 마치 비밀 장소를 공유하는 기분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