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제연 폭포 가는 길, 중문 여미지 옆 감성 산책로 추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차가운 공기에 코끝이 시렸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이 따스하다. 봄이 온 건 알았지만, 여름이 앞당겨진 건지, 벌써 낮에는 반팔옷을 입을 날씨가 됐다.

푸른 하늘과 먼나무

날씨가 좋아 괜히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어진 날이었다. 차를 타고 중문 관광단지를 지나던 중, 갑자기 천제연 폭포가 떠올랐다. 몇 년 전, 육지에서 오신 가족들과 함께 잠깐 들렀던 기억만 어렴풋한 그곳. 이번엔 아내와 단둘이, 천천히 걸으며 제대로 마주해보고 싶었다.


여미지 식물원 옆길, 산책길의 시작

천제연 폭포로 가는 입구는 두 곳인데, 나는 여미지 식물원 옆 중문관광단지 방향의 입구를 택했다. 이 길은 평소에도 참 예쁘다고 느꼈던 곳이다. 양옆으로 동백나무가 줄지어 있는데, 아직 꽃은 수줍게 피지 않았고 대신 먼나무가 빨간 열매를 달고 서 있었다. 잎 하나 없이 열매만 달고 있는 모습이 묘하게 강렬하다.

하늘은 간만에 맑고 파랗고, 길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 길 위를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아쉽게 놓친 하얀 한라산

며칠 전 봄바람 치곤 거센 바람이 내불더니 한라산엔 눈이 내렸나 보다. 중문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남벽이 하얀 자태를 뽐내며 따라왔다. 하지만 천제연에 도착하고 나니 주변 나무들과 지형 때문에 그 모습을 더는 볼 수가 없었다. 사진을 ‘조금만 더 빨리 찍을걸’ 싶은 순간.


구름 사이로 내린 햇살, 그리고 선임교

산책을 이어가다 보니 갑자기 하늘이 바빠졌다. 회색빛 구름이 쏜살같이 흘러가더니 그 사이로 햇살 한 줄기가 땅을 향해 쏟아졌다. 그 모습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황홀했다.

바다위를 수놓은 빛내림

천제연 폭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 중 하나는 바로 ‘선임교’라는 다리다. 양쪽 기둥의 조형물도 멋지고, 다리 위에서 보는 풍경도 훌륭하다. 파란 하늘 아래 그 위를 걷고 있자니, 잠깐 멈춰 사진 한 장 안 남길 수가 없다. 다리 위가 살짝 무섭다며 난리를 피우는 아내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천제연의 세개의 폭포, 그리고 내가 찾은 제2폭포

선임교를 지나면 본격적인 폭포 탐방이 시작된다. 천제연 폭포는 제1, 제2, 제3폭포로 나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 건 제2폭포다. 폭포까지 가는 길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코스지만, 5분 정도면 도착하기 때문에 부담스럽진 않다.

제2폭포는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훨씬 웅장했고, 물줄기가 쏟아지는 소리는 생각보다 깊었다. 다만 폭포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시원한 물안개를 맞는 그런 감성은 조금 부족했다. 전망대 데크 위에서만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다음엔 제1폭포를

천제연은 계절에 따라 그 매력이 다른 것 같다. 특히 제1폭포는 비가 온 다음에만 흐른다 하니, 운이 좋다면 더 멋진 장면을 만날 수 있을지도. 바위 위에 자연스럽게 앉아 사진을 찍고 싶은 이라면 제1폭포를 추천한다. 제2폭포의 정돈된 느낌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으니 말이다.


천제연 폭포는 생각보다 조용했고, 걷는 내내 사람들과 많이 마주치지 않아 좋았다. 중문에서 가까워 부담 없이 들를 수 있으면서도, 잠시나마 자연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는 공간. 봄과 여름 사이, 그 어딘가에서 보낸 짧은 시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