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백약이오름을 찾았다. 예전부터 오르고 싶었던 용눈이오름과 백약이오름이었는데, 올해 용눈이오름이 자연휴식년제에 들어서면서 오를 수 없게 되자 백약이오름마저 오르지 못하게 될까 걱정이 앞섰다.
오름 초입에서 바라본 백약이오름은 오르는 길도 아름다웠다. 다만 숲길이 아닌 초원을 걷기 때문에 한여름에는 오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백약이오름은 예로부터 약초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실제로 지금은 출입이 막힌 굼부리 안쪽에는 많은 약초들이 자라고 있다.
백약이오름 정상에 오르면 어느 한쪽 막힘없이 제주 동쪽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제주 어느 오름에 올라 이런 풍광을 볼 수 있을까? 시선이 머무르는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백약이오름 정상에는 커다란 굼부리(분화구)를 따라 둘레길이 있는데, 둘레길을 걷는데 20분이란 시간이 걸렸다. 오름을 오르는데 20분이 걸렸는데, 둘레길을 걷는데도 20분이 걸렸다.
둘레길을 돌아 풍경이 잘 보이는 언덕에 의자를 펴고 앉았다. 가끔 이렇게 제주의 자연에 빠져들곤 한다.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난 치유받고 있다.
백약이오름을 오르며 흘렸던 땀방울을 식히기 위해 우린 만장굴로 향했다.
만장굴은 용암이 만들어낸 천연동굴이다. 거문 오름 부근에서 시작된 용암이 동굴을 따라 월정리의 바다까지 이어져 흘러갔다. 총 길이 7.4km로 세계에서도 12번째로 큰 용암 동굴이다.
동굴에 들어서자 생각보다 큰 규모에 깜짝 놀랐다. 우리가 모르던 땅속에 이런 큰 동굴이 숨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보다 동굴 깊숙이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백약이 오름에서 흘린 땀방울을 식혀줬다. 만장굴은 지난 한여름 폭염 속에도 평균 13도를 유지할 만큼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1km가 개방된 만장굴의 끝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용암석주가 있다.
정말 많이도 변했다. 월정리를 처음 보았던 때가 벌써 7년 전이다. 어느 해안 길을 달리다 우연히 마주친 월정리 해변은 그저 고즈넉한 어촌마을의 작고 아담한 해변이었다. 마을 어귀에 앉아 바라본 해변은 나의 눈에 모두 들어올 만큼 작은 해변이었다.
바다라곤 반짝이는 네온사인에 둘러싸인 바다만 보고 자란 내가 월정리 해변을 좋아했던 이유도 그간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의 해변이었기 때문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비단 서울에만 있는 이야기는 아닌듯하다. 월정리에서 아직도 변함없는 건 오직 아름다운 바다뿐인듯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을 올레길엔 아직 제주 감성이 남아있었다.
제주도에는 많은 해안 길이 있다. 그중에서도 월정리에서 김녕까지 이어지는 해안 길은 수많은 풍차와 에메랄드빛 바다, 그리고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지형을 만날 수 있다.
제주에는 곳곳에서 용천수라는 지하수가 흘러나온다. 한라산에서 스며든 빗물이 땅속 대수층을 따라 흐르다 틈새를 통해 위로 솟아오른다.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용천수는 예로부터 제주사람들이 멱을 감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김녕에서도 용천수가 솟아오르는 청굴물을 만날 수 있었다.
청굴물은 이곳의 옛 지명인 청굴동에서 유래되었는데 요즘 사진 명소로 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