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서쪽 에메랄드빛 바다를 자랑하는 한림에서 바라보면 그림 같은 섬 하나가 있다. 엄마 섬 제주도를 쏙 빼닮은 작은 섬 비양도다.
비양도는 해안선 둘레가 3.5km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섬이지만, 그 안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담겨 있다. 화산지대에서부터 오름, 습지, 밤하늘까지 원형의 제주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바다 건너 검은 땅
한림항에서 배를 타고 15분이면 비양도에 갈수 있다. 지난번 방문할 때만 해도 배편이 하루 4편이 전부였는데, 관광객이 늘었는지 비양도호 말고도 천년호가 새로 생겨 하루에 8편의 배가 들어간다.
비양도항에 내려 바라본 비양도의 첫 느낌은 고즈넉한 어촌마을, 여유와 낭만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비양도의 주민은 50여 가구밖에 되지 않는다.
제주도에 이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양도에서 학부형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집도 주고 일자리도 준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는데 학생이 없어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를 살리기 위한 마을 이장님의 특단의 대책이었다.
그때 조금 더 용기를 내었다면 지금은 비양도 주민이 되었을까?
화산섬 비양도
해안길을 따라 비양도를 한 바퀴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린아이 걸음으로도 한 시간이면 넉넉히 둘러볼 수 있는 거리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코끼리 바위, 코끼리 형상을 하고 있는 코끼리 바위는 비양도를 만든 비양봉과는 다른 또 다른 분화구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바닷속에도 커다란 용암지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지질학적 증거다. 이외에도 애기업은돌이라 불리는 호니토, 그리고 곳곳에 퍼져 있는 화산탄들이 제주도의 화산지대를 그대로 보여주는데 비양도의 화산지대는 학술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오름, 그리고 석양
늦은 오후 마지막 배가 비양도를 떠나고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우리는 비양도에 우뚝 솟은 오름 비양봉으로 향했다.
제주의 오름은 자꾸만 찾아오게 되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육지에 살 때도 가끔 산을 오르곤 했는데 정상에 올라 보이는 풍경은 첩첩산중이었다. 정상에서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과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제주의 오름은 확실히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완벽한 어둠, 그리고 밤하늘
뭍에서 밤 비행기를 타면 항상 창문 너머로 도시의 화려한 조명들이 보인다. 그 모습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만큼 우린 광(光) 공해 속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상을 밝히는 도시의 불빛들, 제주에는 그런 화려한 조명은 없지만 그보다 반짝이는 별빛이 있다.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수많은 별빛들을 더욱 자세히 보기 위해선 무엇보다 완벽한 어둠이 필요하다.
생명의 보고 염습지
비양도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작은 어촌 마을의 아침은 낭만 가득하다. 자전거를 타고 비양도를 돌아 염습지인 펄랑못에 이르렀다.
물이 잘 빠지는 화산지대에 습지가 생기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펄랑못은 습지 바닥으로 바닷물이 드나드는 독특한 구조 덕분에 염습지가 되었다. 밀물일 때는 바닷물이 들어오고 썰물 때는 바닷물이 빠져나가 담수가 된다. 마치 영화 “라이프 오프 파이”에 나오는 비슈누의 섬처럼 기묘한 기운이 담겨있는 듯하다.
펄랑못은 비양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겐 유일한 놀이터이자 삶의 터전이었다. 마을의 한 노옹은 어릴 적 펄랑못에서 수영을 하며 놀았던 기억을 들려주었는데, 지금은 바닷물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예전만큼 맑은 물을 볼 수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