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빛이 유난히 맑았던 어느 봄날 아침, 바람마저 설레는 기운을 품은 날에 가파도 청보리 축제를 향해 길을 나섰다. 제주의 봄을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면 이맘때 가파도만큼 좋은 여행지도 드물다.

운진항에 도착했을 때, 잔잔한 바다 너머로 가파도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초록빛 섬이 바다 위에 떠 있는 풍경은 그 자체로 한 폭의 수채화 같았고, 짧은 배 시간을 기다리는 순간조차 마음은 이미 섬으로 향하고 있었다.
운진항에서 가파도까지 – 배편과 소요 시간


가파도는 서귀포시 대정읍 운진항에서 배를 타고 약 15분이면 도착하는 작은 섬이다. 여객선은 하루에 여러 차례 운항하며, 첫 배는 오전 8시 40분부터 시작해 오후 4시까지 약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운진항 배 시간표 보기]
다만, 왕복 배편은 현장 상황에 따라 배정되므로 원하는 시간대에 정확히 머무르기는 어려운 편이다. 특히 축제 기간이나 주말에는 방문객이 많아 섬에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질 수 있으니 일정에 여유를 두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청보리 흐드러진 길 위를 걷다
섬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청보리밭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바람결을 따라 파도처럼 물결치는 초록의 풍경은 도심에서 쌓인 피로를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가파도 선착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 자전거 대여점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우린 그저 돌담이 차곡차곡 쌓인 좁은 골목길의 정취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번잡한 수단 없이, 발로 디디는 속도 그대로 섬을 느끼고 싶었다. 그 길 위엔 햇살이 들고, 작은 들꽃이 피어 있었으며, 곳곳에서 청보리밭이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길은 단순하지만 그리움이 깃든 풍경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어느 순간엔 가파도 둘레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자연스럽게 발길이 이어지고, 그 길 끝에는 드넓은 바다와 본섬, 그리고 그 뒤로 웅장하게 자리한 한라산이 펼쳐진다.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착각이 든다.


섬에서의 점심 – 해물 짬뽕 한 그릇
걷다 보면 배가 출출해진다. 다행히 섬 안에는 소박하지만 인기 있는 중화요리집이 있다. 메뉴는 단출하지만, 우리가 주문한 해물짬뽕은 기대 이상이었다.

싱싱한 해초와 뿔소라, 홍합이 푸짐하게 들어간 짬뽕은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었고, 산책으로 지친 몸을 뜨겁게 데워주었다. 특별할 것 없는 식당이지만, 그 공간만의 여유와 따뜻함이 있어 더욱 기억에 남는다.
짧아서 아쉬운, 하지만 깊게 남은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앞서 말했듯 돌아오는 배 시간이 고정되지 않아 섬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빠듯했다는 것이다. 청보리밭을 좀 더 여유롭게 거닐고 싶었고, 해안가에도 좀 더 머물고 싶었지만, 다음 배편에 맞춰 부랴부랴 섬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그 아쉬움마저도 푸른 청보리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날의 하늘과 바다, 그리고 흔들리는 보리의 결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특히 바다 건너로 보이는 본섬과 그 뒤에 묵직하게 자리한 한라산의 자태는 가히 장관이었다.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 마음에 남는 풍경이었다.
여행을 마치며
가파도는 크지 않은 섬이다. 몇 시간이면 충분히 걸을 수 있고, 특별한 볼거리나 화려한 시설도 없다.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서 진짜 제주의 봄을 만날 수 있다.
청보리밭을 걷고, 바다를 바라보고, 땀이 맺히는 햇살을 느끼는 그 순간들이 모여 하나의 진짜 여행이 된다. 돌아오는 길, 마음 한구석이 따뜻하고 조용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바람 따라 걷는 초록의 길, 가파도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짧고도 길게 마음에 남았다.